이 비(보물 제463호)는 신라말 고승인 진공대사의 탑비이다. 진공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고려 태조의 왕사가 되었고, 940년(태조 23) 돌아가시자 그 해에 태조가 직접 글을 지었다고 한다. 글씨는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가려 뽑아 새긴 것으로 왕희지체(王羲之體)이다. 비의 본체는 파손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스님의 사리를 모신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제365호)과 석관(石棺)은 신라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신라 말기의 퇴화된 작품에 비하여 고려 초기의 패기가 넘치는 우수한 작품으로, 지금은 경복궁에 모셔져 있다.
비의 받침 부분인 귀부(龜趺)는 짧은 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모습으로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의 네모 난 구멍에는 뿔을 따로 조각하여 꽂은 것으로 보인다. 거북의 등에는 인근에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 승묘탑비와 같이 이중의 6각형 속에 만(卍)자와 연꽃 무늬를 새겨 놓았으며, 네 발은 받침돌을 힘차게 딛고 있다. 비의 덮개 부분인 이수(螭首)는 앞면 중앙에 전서체(篆書體)로 「진공대사(眞空大師)」라고 새겨 놓았으며, 이 글을 중심으로 사방의 구름 무늬 속에 상하 좌우로 얽힌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노려보고 있다. 옆면의 용도 하늘을 향해 움직일 듯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조각 예술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