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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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문화재

강원도지정원주향교(原州鄕校)
원주향교(原州鄕校) 원주향교(原州鄕校) 원주향교(原州鄕校) 원주향교(原州鄕校)
#분류문화재자료 98호
#소재지원주시 향교길 37-1 (명륜동)
#시대조선
◇시대 : 조선중기   

◇용도 : 원주에 설치된 국립 교육기관
내력 및 건물현황 : 향교는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현재 원주향교 창건 기문의 원문은 전하지 않으나 기문(記文)의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온다. 원주목사 신호(申浩)가 원주향교를 개축하고 당시의 강원감사 류사눌(柳思訥)이 지었다는 것이다. 원문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이것이 1402년(태종 2)의 일이니 원주향교의 기록으로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중건된 원주향교의 규모는 61간으로 관문(官門) 남쪽 3리에 있었으며 청풍루(淸風樓)가 있었고, 1402년[建文 4年]에 목사 신호의 중건으로 되어 있다. 임진왜란 전의 역대 목사 가운데는 민정(閔貞)이 학풍의 진작에 크게 힘썼던 사람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적들의 병화로 향교가 회진하였다. 임난 뒤인 1603년(선조 36)에 이택(李澤) 등이 옛터에 대성전을 재건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목사 임취정(任就正)이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를 건축하였다. 1632년(仁祖 10년)에는 목사 이배원(李培元)이 중수하고 감사 이민구가 기문(記文)을 지었다. 1608년(현종 9)에 교궁을 비롯한 부속 건물이 협소하여 진사 윤억(尹檍)이 여러 유생과 뜻을 같이하여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수하였고, 1734년(영조 10)에 목사 이우신(李雨臣)이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1749년(영조 25)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그 뒤 1839년(헌종 5) 목사 홍치규(洪穉圭)가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72년(고종 9)에 판관(判官) 심영경(沈英慶)이 다시 중수하였으며, 1905년에 향중에서 항교를 수리한 바 있다. 그 뒤 일제 치하에서는 신규선(申圭善) 군수가 부임하여 공사비를 모아 향교 중수사업을 시작하였으나 完工을 보지 못하였고 1923년에 이동진(李東鎭)군수 때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고 제기와 제복을 마련하였다. 1950년의 6・25전쟁으로 동・서재와 동무(東廡)가 소실되었고 대성전은 퇴락하였다. 1966년에 권봉수 전교(典校)가 도와 시・군에 진정하여 보조를 얻어 동・서재를 중건하고, 1970년에 시 보조금으로 대성전을 단청하고 번와공사를 했으며 1986년에 이승춘(李承春) 전교가 도비와 시비의 보조로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이듬해에 명륜당과 서무를 중수하고 1988년에 동무를 복원하였다. 1990년에 도비와 시비의 보조로 동・서재를 중수하였고 1993년 전인봉(全寅鳳) 전교가 자체비용으로 명륜당을 중수하고 동・서무의 번와를 했으며 내삼문(內三門)을 신축하였다.
  원주향교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과 우리나라의 18선현들을 봉안한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廡)․서무(西廡), 강론을 하던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다. 그 외에도 외삼문(外三門)과 수복실(守僕室)이 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초정일(初丁日), 두 차례에 걸쳐 석전제(釋奠祭)를 거행하고 있다.

◇양식적 특성 : 전학후묘의 배치를 지닌 곳으로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조선 후시 익공양식이다


 현재글     원주향교(原州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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