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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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동 역사

반곡동 첫 주민
신석기시대
5천 년 전 우리는 처음 반곡동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짓고 살았어요. 우리는 신석기시대에 살았어요.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이 생활을 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반곡동에 살며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르고, 물고기도 잡으며 살았습니다. 물론 맛있는 과일도 먹었죠. 풍족한 삷은 아니었지만 가족과 함께 있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수 있었답니다.

그동안 원주에서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쓰던 물건은 발견되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원주 혁신도시 발굴조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생활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답니다. 보통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강가나 냇가에 살았지만 우리는 냇가가 아닌 약간 높은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집자리 흔적, 야외 불자리 흔적, 집안의 불자리 흔적, 토기를 비롯한 생활유물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추정해 볼 수 있답니다.
 
 
반곡동 첫 마을
청동기시대
3천 년 전 반곡동은 신석기시대가 저물과 금속을 사용하는 청동기시대가 시작됩니다. 청동기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을 향해 이주하여 살았고, 우리민족의 형성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반곡동 우리 마을은 영서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얕은 언덕위에 있었고, 집자리는 사각형 모양이었습니다. 집자리에서는 청동기시대와 관련된 토기, 석기, 불땐자리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원주의 대표적인 물줄기인 원주천이나 섬강 근처에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됩니다. 물론 원주혁신도시에서도 집자리가 발견되었습니다.
 
 
반곡동 첫 나라와
북원경의 흔적
철기시대가 되면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고 교류가 증가하면서 고대국가가 생겨나게 됩니다. 원주는 고대 삼국이 정립되기 전에는 삼한의 하나였던 마한 소국 중의 하나였으며 이후 고대국가가 체제를 갖추고 쟁투가 본격화하면서 백제, 고구려, 신라의 영토로 바뀌게 됩니다. 평원군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문무왕이 지방을 정비하면서 북원소경이 되었고, 경덕왕 때 북원경으로 바뀝니다.
 
 
반곡동 사람들의 삶의 흔적
고려ㆍ조선시대
원주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23년(940)에 붙여진 것으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주는 조선 태조 4년(1395) 강원감영이 설치되면서 강원도의 수부도시가 됩니다. 원주혁신도시가 위치한 반곡동은 강원감영에서 동쪽으로 약 2.5km 떨어져 있으며, 강원감영을 중심으로 한 시내에서 보면 관문 밖의 외곽에 해당합니다. 반곡동 유적에서는 고려~조선시대에 걸친 다양한 삶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기와를 굽던 기와가마, 고려 말 조선 초의 돌덧널무덤, 조선시대의 널무덤, 조선시대의 집자리와 건물지, 근대까지 사용된 배수로 등의 수리시설 등이 그에 해당합니다. 이들 유구에서는 도기, 자기, 기와조각 등이 많이 나왔습니다. 또한 주거환경, 생산활동, 장례풍습 등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조사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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